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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말씀은 내가 막 태어나서는 그렇게도 병치레가 많은 아이였는데 얼마 후는 어떻게나 살이 찌고 건강했던지 후다마 야마인지 무언지 하는 당시 일본 씨름의 최고봉인 요꼬쯔나 이름을 갖다 붙여 별명을 삼았다고 하셨다.
그러나 커면서 여름을 잘 타는 체질로 다소 계절성으로 고생을 하다가 중학생이 되어서는 그것도 모두 극복을 하고는 매우 건강한 체력을 가지게 됨과 동시에 오히려 남보다 훨씬 더 나은 운동선수가 되어 있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작은 상처나 뼈에 금이 가는 등의 사소한 일로 병원을 찾는 일은 오히려 더 많아졌고 30대에 들어서서는 맹장염을 앓기도 했을 뿐 아니라 노년이 된 후 작년에는 예상치 못하게 축농증 비스무리한 반전성 유두종이라는 진단을 받아 미처 상상도 해 보지 못했던 코 수술까지 받게 되었던 것이다,
처음 동네 이비인후과로부터 내가 축농증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내 나름대로 보훈병원을 먼저 머리에 떠 올렸고 어떤 경우든 모든 비용의 60%가 국가 유공자인 나에게는 할인 적용이 되는 터라 이참에 그런 혜택이라도 받아야지 하는 생각부터 먼저 떠올려 오히려 스스로가 고무적이기까지 했던 것이 사실이다.
작년 9월 용기를 앞세운 나는 먼저 분당에서 전철을 타고 천호역에서 내려 보훈 병원에서 오는 셔틀 버스를 탔다. 채 15분 정도 거리의 보훈병원은 생각보다는 시설이 그런대로 괜찮았고 또 과거 처음으로 보훈병원에 설치한 MRI를 내가 근무했던 회사에서 팔았기 때문에 특수 장비에 대한 투자도 만만치 않았던 터라 그런대로 믿음이 갔다.
그러나 대기 환자들이 너무 많다보니 나는 꽤나 시간이 걸려 이비인후과 의사의 진료를 받을 수 있었고 모든 수술에 관한 사전 준비도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단 한 가지 불만이었던 것은 수술 일자가 지금의 9월이 아니고 두 달이나 건너 11월 28일로 잡혔다는 것과 4일간의 입원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는 수 없다는 마음으로 뒤돌아 선 나는 수술을 하기 위한 바로 그 날을 기다리고 만 있었는데 11월에 들어 선 어느 날, 어떤 지인이 전국에 독감 예방 주사약이 모자라니 우리 동네로부터 그렇게 멀지 않은 “홍 이비인후과 병원”이라는 곳에 가 빨리 예방 주사를 맞으라는 전달이 왔다.
나는 속으로 무슨 독감예방 주사를 이비인후과에 가 맞으라고 하는가 하는 의아심을 가졌으나 결국은 얼른 그 “홍 이비인후과 병원“이라는 곳을 찾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차례가 오자 홍 원장이라는 여자 원장이 내 코 속을 먼저 점검을 해 보더니 역시 축농증 을 지적 해 나는 이미 11월이면 수술을 하도록 보훈 병원에 예약이 되어있다는 말로 대답을 했다.
나는 예방 주사를 맞고 나오는 길에 그곳 원무과에다 만약 내가 축농증 수술을 이곳에서 한다면 비용이 대충 얼마나 들어가느냐고 묻고 그 결과를 가지고 보훈 병원과 대조를 해 보기로 했다.
그 결과는 시설이 준수한 홍 이비인후과에서는 당일 퇴원의 조건으로 수술비용이 *****정도가 일단은 들 것이라는 답변이었고 반면 보훈 병원은 약간은 후진 면이 있긴 하나 4일 간의 입원 조건에 ***** 정도가 될 것이라는 말을 해 역시 장단점과 내 개인의 편의도를 모두 고려한다면 결국은 왕복 4시간이 걸리는 보훈 병원 보다는 비싸지만 “홍 이비인후과 병원”도 전연 멀리 할 수는 없는 병원이구나 싶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음날 마침 아들 녀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는 좌는 이렇고 우는 이렇다는 얘기를 했더니 기어코 보훈병원은 너무 젊은 의사들이고 4일간의 입원도 입원이지만 통원 치료를 언제까지 할지도 모른다는 얘기와 더불어 왕복 4시간씩이나 걸리는 거린데 잘못하면 다른 병으로 고생하시겠다는 말을 서슴치 않고 해 일단 비용을 내는 쪽도 아들이라 그러마하고는 보훈병원에다는 취소 신청과 함께 예약한 검사비 까지 모두 도로 반환을 받기로 했다.
<집도의 이현종>
실은 홍 이비인후과의 홍 원장은 귀만 보는 전문 의사였고 서울대 출신인 이현종 원장은 코만 보는 전문 의사였다.
특히 동문인 이현종 원장은 이전에는 삼성 병원에서 근무를 했고 지금은 바로 그 삼성 병원의 임상 교수인 동시에 분당 서울대 병원의 임상 교수이기도 했다.
수술 당일 물론 동문이라 믿음이 더 갔던 것도 사실이나 전신마취를 하기로 했기 때문에 만에 하나 내가 깨어나지 못하면 바로 천당이나 지옥에서 영원히 머무르고 말게 되는 일이라 내 자신 약간은 걱정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결국 수술이 끝나자 “일어나세요! 일어나세요!”라는 간호원의 큰 소리에 마취로부터 깨어나긴 했지만 나는 그렇게 수술이 간단히 끝이 나 있을 줄은 몰랐다.
비록 수술은 아침에 시작 했으나 수술의 결과가 좋아 퇴원은 밤 8시쯤에 시켜주었다.
내 한쪽 코 속 깊숙한 곳에 아마 물혹 같은 것 여러 개가 나도 모르게 자리를 잡고 있어 시신경까지 약간의 영향을 주었던 모양이었다.
물론 옛날처럼 윗입술을 자르고 젖힌 후 속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고 코 구멍으로 내시경을 넣어 수술을 하는 것이라 30분 정도면 끝이 나고 마는 것이 또한 편리했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나는 다음날부터 매일 통원 치료를 하기로 하고 원무과에서 *****이면 다 될 줄 알았던 수술비와 검사비를 ***** 넘게 지불을 한 후 이현종 원장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는 냉큼 병원을 나와 버렸다.
이 정도라면 진작 수술을 할 걸....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었다. 통원 치료를 하다 보니 수술 후 그 예민하고 여린 살을 메스로 잘라냈으니 얼마나 아프겠는가? 거기다 또 수술한 자리에 딱지는 많이 앉고 소위 드레싱을 한다면서 그 딱지들을 모두 떼어 내 말끔히 해야 하는 그 작업이 나에게는 매일 매일의 고통이 아닐 수 없었다.
일단 의사가 고개를 뒤 머리받이에 고정을 시키고 긴 도구로 코 안 깊숙이 집어넣어 치료를 하면 아파도 더 물러날 뒤가 없다. 또 통증이 참을 수 없이 많이 오면 이번에는 코 속에 마취 꺼저를 집어넣어 십 분이나 그 이상을 기다렸다가 다시 쑤시곤 했다.
그리고 사실은 말이 축농증이지 병명을 정확하게 얘기 하자면 반전성 유두증이라는 것이어서 재발이 흔한 탓에 항생제를 계속 3개월 동안 복용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이었다.
코 속의 상처는 딱지가 앉으면 떼고 또 딱지가 앉으면 떼고 하는 가운데 조금씩 메스로 잘려나간 살점의 부위가 가장자리부터 가운데 쪽으로 점점 나아가는 모양이었다.
나는 다소 자른 자리가 커서 그런지 사실은 3개월이 지나서야 완벽하게 새살을 모두 채우게 되었고 또 그 기능도 정상적이 되었다.
이현종 동문의 말에 따르면 반전성 유두종일 경우 재발이 6개월 또는 1년 이내에 가장 많이 발생하는 수가 있기 때문에 비록 수술과 매일의 통원 치료가 한 달 정도에 끝나고 또 일주일에 두 번 하는 치료도 두어 달 만에 끝이 났지만 앞으로는 최소한 한 달에 한 번씩은 수술한지 1년이 되기까지는 계속 와서 체크를 해 보아야 한다는 말을 했다.
물론 지난달에도 이번 달에도 “백점!”하는 이현종 동문의 말에 기분 좋은 느낌을 받았지마는 분명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축농증 비스무리한 반전성 유두종의 수술은 수술 그 자체 보다는 통원 치료를 할 때가 더 힘이 들더라는 말과 수술비를 다 따져보니 처음은 *****이 약간 초과되나 계속 들락거려야 하는 부대적인 비용까지를 다 합쳐보면 아무래도 *******은 들어야 되겠더라는 얘기다.
3.11.2010 운몽/ 구문굉 |